진중권의 "'곽노현' 거울에 비친 진보의 일그러진 초상" 에 대한 반론
진중권의 글에 대해 몇 가지 반론들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진중권의 논리에 헛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건너간 돈의 대가성을 신앙의 수준으로 믿고 있다는 점이다.
진중권이 작정을 하고 이것저것 늘어놓은 관계로, 그에 대해 모두 반박하자면 아마 수십페이지는 될 것 같다. ( 불길한 예감은 꼭 맞는다더니...ㅜ.ㅜ )하지만 이 문제의 핵심은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관계상, 핵심에 대한 부분 외에는 간단한 반박만을 실을 것이다.
경고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 졸라 길다. 굳이 전부 읽을 필요는 없다. 글실력이 없어서 장황해진 탓도 있겠고, 정봉주 의원의 폭풍집필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읽어주면 고맙겠다.
그가 제기한 쟁점들에 반박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을 나열해보면 이렇게나 많다.
- 정의에 소유격을 붙이면 안돼? 너와 나의 정의가 다르다면?
- 곽교육감 옹호 논리에는 의리, 우정, 인간애, 용기(편승) 밖에 없었나? 다른 지식인들의 주장들은 그렇게 가치없는 내용이었나?
- '멀쩡했던' 여론이 바뀐 것은 나꼼수 때문이었나? 그 이전에 이미 반전은 일어나고 있었다.
# 도덕적 책임을 져야하는 이유, 과연 주어져있는가? 그것은 타당한가?
# 사건의 재구성, 과연 제대로 되었나?
# 차용증에 대한 해석, 과연 맞는가?
- 박탈당한 유권자의 권리? 곽 교육감이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 일에 대한 책임을 곽교육감이 져야 하는가?
- 긴급 부조의 방식, 다른 좋은 대안의 존재 여부는 이번 사안의 판단과는 별개다.
- '무죄추정의 원칙', '사퇴는 판결이 내려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에 대한 진중권의 편협한 해석
- 곽 교육감을 처벌하는 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가?
- 세 번의 기회? 곽교육감의 판단은 잘못이었나?
- 윤리에서 선동으로? 곽교육감 옹호 주장은 선동일 뿐인가? (진중권은 윤리와 도덕을 독점했는가?)
- 검찰과 언론에 대한 문제제기가 잘못인가?
- 황우석, 심형래에 대해 진중권이 옳았다고 이번에도 당연히 옳을 것인가?
- 진중권, 논객질 그만 해야 하나?
이 중에서 # 표시된 부분이 핵심 쟁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부분들은 간단히 다루거나, 추후의 일로 미루거나, 다른 분들이 대신 반박해줄 것이다. 사실 많은 논객이나 지식인들이 이미 반박한 부분도 많이 있다고본다. 어쩌면 이미 결론은 나와있다. 진중권이 애써 무시했을 뿐이지만.
# 도덕적 책임을 져야하는 이유, 과연 주어져있는가? 그것은 타당한가?
"돈을 건넸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한상희 교수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설명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도덕적 책임의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한다.
"선거비 보전의 구두약속이 있었고, 단일화를 위한 후보사퇴가 있었고, 차용증과 더불어 2억의 돈이 전달됐다. 이로써 거래는 사실상 이루어진 것이다(이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돈을 절대로 줘서는 안 되는 이유다). 다만 정직하지 못한 측근들을 둔 탓에 곽 교육감은 이 중요한 사실들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그 일을 저지른 것은 그의 캠프에 속한 사람이며, 그가 직접 일을 위탁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 모든 사태에 아무런 도의적 책임도 없다고 해야 할까?"
여기서 그는 분명하게 대가성을 확신하고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거래'는 '사실상' 이루어졌다고 단정하는데('사실상'의 어법이 홍준표의 '사실상'과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거래'는 '사실상' 이루어졌다고 단정하는데('사실상'의 어법이 홍준표의 '사실상'과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선거비 보전의 구두약속이 있었고, 단일화를 위한 후보사퇴가 있었고, 차용증과 더불어 2억의 돈이 전달됐다."
는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났기 때문이란다. 이게 정말 그렇게 확신에 차서 사퇴를 요구하는 이유란 말인가? 정말로 이것이면 진보진영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기에도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뭉뚱그려버리면 사건의 세세한 디테일은 무시되고 분별력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곽노현 자신이 경고했던 바로 그 대목이다.
"법은 분별력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사안의 차이를 몽롱하게 흐려버린다면 법은 왜곡되거나 혼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식의 단순화에서 살아남을 인간이 몇이나 될까?
(절대로 그럴리가 없는 가카의 BBK도 유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보수를 자임하는 수꼴들이 진중권의 공격에 미소지으며 리트윗을 날려대는 이 황당한 불충의 풍경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수많은 논객들이 그의 조급한 단정과 단순화가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그는 이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재구성한 사건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거기서도 이와 같은 과도한 단순화를 통해 대가성의 뉘앙스를 풍기기에 급급하지,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른바 그의 '상식'에 근거해서 당연하게 이르는 결론이 다른 이에게는 너무나 황당한 추론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결론을 강요까지 하는데 이른다.
(절대로 그럴리가 없는 가카의 BBK도 유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보수를 자임하는 수꼴들이 진중권의 공격에 미소지으며 리트윗을 날려대는 이 황당한 불충의 풍경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수많은 논객들이 그의 조급한 단정과 단순화가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그는 이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재구성한 사건 이야기와 연결되는데, 거기서도 이와 같은 과도한 단순화를 통해 대가성의 뉘앙스를 풍기기에 급급하지,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른바 그의 '상식'에 근거해서 당연하게 이르는 결론이 다른 이에게는 너무나 황당한 추론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결론을 강요까지 하는데 이른다.
"설사 자신은 몰랐다 하더라도, 자기 캠프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정정당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당선됐다면, 당연히 당선을 반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곽노현이 져야할 도의적 책임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해 그는 당선을 반납하는 수준이라고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어째 가카의 키스 정도로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못되는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뭐든지 간에, 이게 그냥 혼자만의 주장에서 그친다면, 자기가 그렇게 판단한다는데 뭐라고 할 이유가 별로 없다. 대가성 여부는 아직 논쟁적인 부분이며, 당연히 다른 입장들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주장이 절대적이라고 내세우면서 다른 주장들을 도덕을 흐리는 일 쯤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는거, 이거 왜 인정하지 못하는가? 어째서 그는 모든 판단기준을 독점하고 강요하는가? 이 부분은 이전에도 이미 많은 논객들의 칼럼에서 지적되었으므로, 대가성을 논하는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보자.
# 사건의 재구성, 과연 제대로 되었나?
곽 교육감도 인정하는 사실에서 출발하기로 하자던 그가 재구성한 사건의 개요를 보자.
"박 교수는 약속의 이행을 요구했다. 그 후 강경선 교수를 통해 2억의 돈이 박 교수 측에 전달됐고...."
과연 저 두 문장 사이에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되는걸까? 저 돈이 과연 무슨 명목으로 오고갔는지가 이 문제의 핵심 아닌가? 저렇게 써놓으면 마치 약속을 이행하는 돈 전달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교묘한 조선일보식 프레임이다. 사실만 적시한다고 해놓고, 그렇게 재구성된 문장은 사실만이 아닌 다른 뉘앙스를 짙게 풍긴다.
그는 금품 전달 약속이 "실제로 후보사퇴가 이루어지고 그 후에 권리요구가 따를 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고 주장하는데, 박명기 교수가 훨씬 큰 액수의 선거비 보전을 포기하고 2억 또는 7억의 대가만을 바라고 사퇴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물음에는 어찌 답할 것인가?
이제 진중권은 슬쩍 차용증 얘기로 넘어간다. 그것이 대가성의 핵심 증거인 듯이 오로지 거기에만 매달리고 확신한다. 과연 그러한가?
# 차용증에 대한 해석, 과연 맞는가?
진중권이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데에는 차용증이 매우 핵심적이면서도 거의 유일한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차용증의 의도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차용증의 존재가 대가성의 존재나 불법성의 인지를 입증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대가성이 없음을 증명하는 근거로 사용될 여지가 더 크다. 채권과 채무의 관계를 서로 바꾸어가며 이중으로 작성됐다는 차용증이라면, 돌려받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므로, 선의를 강화하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차용증에 관한 부분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던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를 생각해볼 때, 차용증의 작성 이유가 곽교육감의 지시에 의해서인지, 강교수 자신의 판단인지, 박교수측의 요구 때문인지, 어떤 명분으로 작성된 것인지는 전혀 알려져있지 않다. 단지 검찰이 그것을 확보했다는 것만이 알려져있을 뿐이다. 진중권에게는 이 차용증이 모든 것을 결론내버리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차용증이 오갔다는 사실은 당시 상황이 이른바 "구제모드"가 아니라 여전히 "권리모드"였음을 함축한다. "구제모드"였다면 돈을 주며 굳이 차용증을 받을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그 차용증은 이중으로 작성됐다. 물론 곽 교육감측에서 차후에 문제의 차용증을 근거로 돈을 되돌려 달라고 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이 모든 정황은 곽 교육감의 주관적 믿음과 상관없이 당시의 상황은 여전히 "권리모드"였음을 말해준다."
이건 그저 시나리오 중의 하나일 뿐 아닌가? 과연 차용증에 대해 다른 해석은 불가능한 걸까?나는 차용증이 저런 식으로 해석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히려 그것은 대가성을 무력화시키는 증거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게 차용증을 쓴 이유가 되는게 아닌가?검찰이나 언론도 이걸 크게 쟁점화하지 않지 않았던가? 대개 그럴 것처럼, 나는 그것이 단지 시비거리를 피하기 위한 자기 방어의 성격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일거수 일투족을 정권에 감시당하던 사람이 적지 않은 돈을 전달하는 것이 오해를 살 수 있고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방어 수단을 찾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싶었고, 실제로도 결국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기부를 하는 종류의 선의라면 차용증은 무척 생뚱맞은 것이 되겠지만, 이 일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중차용증의 존재는 돌려받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므로, 그것이 선의에 의한 것임을 더욱 강화하는 증거로 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중권은 이런 가능성을 애초에 배제해버린다. 진중권은 그러한 차이들에 애써 눈감으면서 그것이 오해의 여지를 차단하는 정도가 아니라 불법성을 인지하고 이를 은닉하려는 목적이라고까지 나아가려고 한다.
차용증 혹은 이중차용증이 그렇게 대가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면, 애초에 누구든 왜 그것을 작성했던 걸까? 자신들의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분명히 말하지만, 차용증의 존재는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한다. 대가성을 감추기 위해 차용증을 썼다는 말은, 먼저 대가성이라는 것이 존재함을 증명한 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있지도 않은 대가성이라면 이를 감춰야할 목적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 선후관계를 교묘히 섞어서 이것이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이런 식인 거다.
"너 내 돈 훔쳐갔지? 너한테 돈이 없는 것을 보니, 내 돈을 훔쳐가서 숨긴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으면 너는 돈을 숨길 필요가 없었을테니까."
애초에 훔쳐가질 않았던 것인지, 훔쳐가서 숨긴 것인지는 돈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차용증이 없으면 대가성은 부정되는가? 아니다. 그 때는 또 대가성이 있으니 차용증을 안 쓴 것이 아니냐고 공격한다.
"너 내 돈 훔쳐갔지? 너한테 돈이 있는 것을 보니, 내 돈을 훔쳐간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진중권은 이걸 증거라고 말한다. 그것도 그가 그토록 대가성을 확신하는 유일한 증거.
당시의 보도를 참고하면, 차용증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는지 다양하게 나와있다. 하지만 진중권처럼 오직 한가지 해석이 맞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자세히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검찰도 그걸 대단한 증거로 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과연 검찰이 차용증을 주요한 증거로 삼았는지는 기소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내용을 나로서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진중권은 그걸 알아서 이렇게 주장하는걸까?
"차용증은 어떤가? 그에 대해서도 곽 교육감은 역시 그것의 작성을 "지시한 바 없고 보고 받은 바 없고 추인한 바도 없다"고 할 것이다. '최후진술문'을 보면 곽 교육감이 당시의 상황을 권리모드에서 구제모드로 전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결국 강 교수가 곽 교육감에게 상황에 대해 거짓말을 한 셈이다. 다시 말해 강 교수가 곽 교육감의 허락도 받지 않고 차용증을 주고받음으로써 사실상 후보단일화에 관련한 거래를 성립시켜 버린 것이다."
아직 곽교수가 차용증에 대해 어떻게 진술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진중권은 자기가 만든 예상답변에 근거해서, '차용증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강교수에게 대가성 거래를 성립시킨 죄를 뒤집어씌운다. 이 대목은 정말 가정법에 근거해서 죄를 따져 비난하는 조선일보를 떠올리게 한다. 앞서 말했듯이, 차용증의 존재가 대가성을 입증하는게 아니라면, 저 주장은 쓰레기가 된다. 하지만 진중권의 결론은 이렇게 나아간다.
"곽 교육감이 모르는 사이에 캠프의 관계자에 의해 후보사퇴를 대가로 한 금전 제공의 약속이 이루어졌고, 곽 교육감이 모르는 사이에 그 대가의 지불이 실행되었다. 이것이 존재하는 객관적 상황이고, 남은 것은 이에 대한 곽 교육감의 '주관적 해석'뿐이다."
여전히 그 돈이 대가성으로 지불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는데도 '대가의 지불이 실행'되었단다. 무엇을 근거로? 진중권이 내놓은 증거라는 것은 저 알량한 차용증 뿐이고, 거기에 기대어 늘어놓은 시나리오 뿐이다.차용증이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한다면, 진중권의 모든 논리가 무너진다. 반대증거가 하나도 없는가? 아니다. 곽교육감이 대가성 단일화를 거부했다는 수많은 증언들이 있고, 약속의 존재 자체를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이를 반박할 증거나 증언은 아직 나온 것이 없다. 과연 진중권의 주장은 의심의 여지가 하나도 없는가? 과연 여전히 곽교육감의 도덕적 책임을 묻는데 아무런 추가 정보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게 정말 빈틈없는 논리인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까지 할 수 있을만큼?
이제 다른 쟁점들을 간단히 소개하도록 하자.
- 정의에 소유격을 붙이면 안돼? 너와 나의 정의가 다르다면?
정의에 소유격을 붙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인가? 절대적 정의라는게 존재 가능한가? 정의는 정치적이지 않은가? 과연 정의에서 가치판단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가?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올려주셨다.
일부를 인용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자식 키우는데 쓰는 돈이면 아프리카에서 수십 수백명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건 비도덕적인건가? 사람이 살기 위해 동식물들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은 정의인가?"맞는지 틀리는지는 차후의 문제로 남겨두고, 정의의 앞에 소유격까지는 아니어도 '주어'라도 붙여주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은 나뿐인가? 그 분의 문제제기는 적어도 진중권이 말하듯이 그렇게 고고하게 시공을 초월해서 존재하시는 도덕이나 정의라는 것을 의심해볼만한 구석이 있다는 정도의 공감은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사형제에 대해 서로 다른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어느 한쪽이 잘못된 주장을 하기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개고기를 먹는 것이나 모피를 입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찬성하는 사람들은 유일한 정의를 놓고 싸우는 것인가? 남을 공격하려고 함부로 단언이라는 것을 하는건 현명한게 아니다.이런 단언을 지키려고 또 얼마나 많은 글을 써대야 할 것인가?
- 곽교육감 옹호 논리에는 의리, 우정, 인간애, 용기(편승) 밖에 없었나?
그것은 정의를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였나? 아니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동원된 것인가?
진중권은 자신의 주장에 반박하는 논리들을 몇 가지의 쉬운 오류들로 단순화시켜 그게 전부인 것처럼 몰고 가고 있다. 이전에도 많은 이들이 진영논리와 편가르기를 넘어선 많은 주장들을 해왔지만 그는 애써 무시해왔다. 칼럼으로 소개된 논객들의 글도 제목만 읽은 것 같다는 의심이 든다.그나마 이번에 한상희 교수의 글에 대한 반론은 마지못해 최소한 읽어보긴 한 거 같지만 말이다. 바빠서일까? 그럼 왜 그리 많은 시간을 그가 칭하는 "닭"들을 돌보는데 보내고 있는 것일까?내가 어느 칼럼을 읽어보라고 권했을 때 진중권의 대답은 "그 분 글은 수준 떨어져서 안 읽는다"였다. 그는 왜 손쉬운 상대들만 상대하는가? 정작 새겨들어야 할 논리들을 제공해주는 글들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외면하면서 말이다.내가 아직도 그의 글을 읽고 있는 것은 혹시나 뭔가 새로운 쓸만한 논리라도 들고 나올지도 모를 가능성 때문인 것이지, 지금까지의 그의 논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다른 지식인들의 주장들은 정말 그렇게 가치없는 내용이었나? 선정적인 제목만 본 건 아닌가? 이번 글에서 그가 언급한 글들은 그가 말하듯 그렇게 단순한 내용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덕은 보수에게 줘 버리라는 정희준 교수의 글은 제목이 자극적이긴 하지만, 진보에게는 엄격하게 들이대는 도덕의 기준이 왜 보수에게는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지를 비판한 내용이었다. 억울함에 억지를 좀 부린 느낌은 있지만, 성급한 사퇴 주장에 비해 못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조희연 교수 글에서는 '상식'의 의미가 누구나 받아들일만한 당연한 추론의 의미가 아니라, 대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흔한 레퍼토리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내용을 읽어보면 당연히 추론이 가능하고, 이는 한상희 교수의 글에서도 더 세련되게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같은 오독을 반복하고 있다. 박동천 교수의 글은, 보수 언론의 프레임 안에서 다른 의견들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그의 나태를 질책하는 말이었다. 그 이전의 글에서는 이미 개연적 명분과 일리있는 의심만으로 유죄를 단정하는 근거로 삼지 말라는 지적을 했었는데, 진중권은 여전히 이를 혼동하고 있다. 그가 비교적 초기에 발표된 그의 글을 눈여겨 보았으면 아직까지 지금과 같은 억지를 부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상희 교수가 "진중권의 정의는 무엇인가?"라고 정의에 소유격을 붙인 것은 진중권이 정의나 진리를 독점한 듯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제기한 문제였다. 그가 말한 핵심인 분별력에 대해 진중권은 대답하지 않는다. 애초에 곽교육감 스스로가 법은 분별력에 기초하고, 사안들 간의 차이를 지워버리면 법이 흐려지고 혼탁해진다고 말했던 것에 귀를 기울였다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내 생각에 진중권은 이 글들을 제목만 보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보았다. 정작 필자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는 진중권이 이 주장들을 단지 '꺾어야 할 것'으로만 바라보았지, 다른 가능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진중권의 단순한 공격들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는데다가, 그마저도 반론의 여지가 매우 크다.
- '멀쩡했던' 여론이 바뀐 것은 나꼼수 때문이었나? 그 이전에 이미 반전은 일어나고 있었다. 나꼼수는 이를 강화한 것 뿐.
여론이 바뀐 것은 나꼼수 때문이었나? 그의 판단에 김어준 총수와 나꼼수에 대한 반발심이 있는 것일까? 어째서 나꼼수가 멀쩡했던 여론을 '호도'했다고 하는 것일까?
사실 곽노현 사건에 대한 여론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나꼼수가 방송되기 한참 전이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곽노현 사건에 대한 수사 사실이 확인된 건 26일이었고, 27일 새벽 3시에 기사화된다.
검찰, 곽노현(서울교육감) 수사
"교육감후보 단일화 대가로 1억 이상 전달"수수 의혹 박명기 후보 체포, 곽교육감 "정권의 보복"조선일보, 8월 27일 토요일 입력 : 2011.08.27 03:01 / 수정 : 2011.08.27 05:32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27/2011082700222.html"검찰이 작년 6·2지방선거 때 이른바 진보진영의 서울시 교육감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단일후보로 결정된 곽노현 후보(현 교육감) 측에서 상대 후보 측에 거액의 금품이 건네진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교육감후보 단일화 대가로 1억 이상 전달"수수 의혹 박명기 후보 체포, 곽교육감 "정권의 보복"조선일보, 8월 27일 토요일 입력 : 2011.08.27 03:01 / 수정 : 2011.08.27 05:32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27/2011082700222.html"검찰이 작년 6·2지방선거 때 이른바 진보진영의 서울시 교육감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단일후보로 결정된 곽노현 후보(현 교육감) 측에서 상대 후보 측에 거액의 금품이 건네진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곽노현 교육감의 기자회견은 8월 28일 오후, 관련 내용을 다룬 나는 꼼수다 발매일은 8월 31일 오전이었다. 트위터 상에서의 속도를 고려하면 이미 한참이 지난 후였다.
김종배와 진중권과 진보언론들까지 곽노현의 사퇴를 말하고 있을 때, 곽노현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은 트위터상에서 소수였다. 하지만 그 소수는 사퇴를 말하기엔 아직 사실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검찰 발표의 헛점을 파고들었고, 각서, 녹취록의 존재에 대해 검찰과 언론들이 거짓 정보를 흘린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신중론이 힘을 얻게 되었다. 그나마 그런 주장이 설 자리가 있었던 것은 트위터라는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장들은 빠르게 전파되고 반박되었으며 새로운 주장들이 쉽게 퍼질 수 있었다. 당시 검찰측의 주장이 의심받는 정황들이 이미 알려지고 있었다. 당시의 뉴스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속보] 검찰 "각서는 없다" "단일화하면서 문서상으로 합의한 사실 없어"
(뷰스앤뉴스, 2011-08-29 12:27:03)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8359
(뷰스앤뉴스, 2011-08-29 12:27:03)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8359
강 교수 가족 “곽 교육감 20년 전에도 대가 없는 도움”
(경향신문, 2011-08-29 17:27: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291727251&code=940100
(경향신문, 2011-08-29 17:27: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8291727251&code=940100
당시에 많이 리트윗되었던 부정변증법(@hagi87)의 글은 나꼼수 등장 이전이었고, 이미 곽노현 사퇴를 주장했던 측이 맞이할 역풍을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곽노현이 아니다 (부정변증법의 교육창고, 2011. 8. 29. 오후 7:14) http://hagi87.blogspot.com/2011/08/blog-post_29.html
이 글의 첫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어떤 경우가 되었든 이미 SNS세계에서는 그리고 2008 촛불에서 희망버스까지 이어진 새로운 다중들의 세계에서는 법적 판결이야 기다려 볼 일이지만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곽노현 교육감의 무고함으로 입장 정리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바른의 등장은 결정적인 반전의 계기를 가져오게 된다.
박명기 변론, '법무법인 바른' 수임 논란, BBK, 도곡동, 박연차, 광우병, 미디어법, 부산저축은행...독식
(뷰스앤뉴스 , 2011-08-30 08:47:04)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8377
(뷰스앤뉴스 , 2011-08-30 08:47:04)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8377
곽교육감 문제를 다룬 나는 꼼수다가 나온 시간은 8월 31일 오전, 그 날은 한 여중생이 1인시위를 하다가 위협당하는 사진이 트위터에 알려진 날이기도 했다. 그 여중생은 나꼼수의 지령을 받고 즉시 실행에 옮긴 것일까? 이미 바닥 민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근거가 아닐까?
물론 발표된 나꼼수가 여론의 반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여론을 뒤집은 것은 아니었다. 검찰의 잇따른 피의사실 공표와 보수언론들의 손발이 착착 맞는 여론몰이가 그 의도를 너무나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지만, 아직 정확한 사실들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미 트위터상에서는 경향신문에 보도되었던 곽교육감의 거액의 선행들이 알려지면서 선행일 가능성을 지켜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으며, 주변 인물들의 일화 등이 알려지면서 그의 인간됨을 알게된 여론이 좀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 후 유시민, 이정희, 전병헌 의원 등의 지지글이 등장하면서 한층 힘을 얻게 되었다. 그 흐름을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논의에 참여했던 나로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반전의 흐름은 이미 일어났었고, 나꼼수는 그것이 다시 뒤집히지 않도록 강화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나꼼수에 등장한 주장도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검찰의 수법에 대한 나꼼수의 논리들은 이미 나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그들의 영향력이 컸을 뿐이다.
다음 아고라에 개설된 "곽노현 교육감 파문..당신의 생각은? "이라는 게시판에는 무려 1611개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 당시 여론의 흐름을 보여주는 한 가지 단면이 될 수 있다. http://bbs4.agora.media.daum.net/gaia/do/agora/participant/list?bbsId=C001&issueArticleId=175&issueBbsId=I001
감정적인 주장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 사실이라고는 알려진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지난 행적이나 선의를 가정하고 다른 가능성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은 있었다. 당시에 나는 곽노현 교육감을 믿는 쪽이었지만,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강변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도 우린 모두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제한되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 진중권은 어째서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인듯 말하면서 반대의견은 관심법이네 종교네 하면서 오히려 비난까지 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작 가정을 믿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가 말이다.
- 박탈당한 유권자의 권리? 곽 교육감이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 일에 대한 책임을 곽교육감이 져야 하는가?
책임져야 할 심각한 위반에 대해서는 당선무효라는 법적 구제방식이 있다. 그 이상의 책임을 바라는 것인가?노무현 대선 당시 단일화 상대였던 정몽준의 번복이라는 비겁한(?) 방법으로 지지층 결집시켜 승리했으면 반납해야 했는가?
- 긴급 부조의 방식, 다른 좋은 대안의 존재 여부는 이번 사안의 판단과는 별개다.
- '무죄추정의 원칙', '사퇴는 판결이 내려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에 대한 진중권의 편협한 해석
가장 어이없는 논리전개를 보이는 부분 중의 하나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한 부분이라서, 나는 그가 얼마나 편협하게 이 문제를 다루는지를 드러내는 정도로 그치겠다.
진중권의 글을 보자.
"가령 한상희 교수의 말을 뒤집어 보자. 그럼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한 도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다'는 명제가 얻어진다. 그것이 바로 곽 교육감을 옹호하는 측의 논리다. 그들이 '유죄판결 전까지 절대로 사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치 한상희 교수가 한 주장인 것처럼 자기 맘대로 명제를 하나 만들고, 이게 옹호측 논리라고 강변한다. 그가 선결문제 전제의 오류 운운한 부분은 첫 번째 부분, 즉 '① 후보사퇴와 금품제공 사이에는 시간적 연속만 존재할 뿐이다' 를 가정으로 처리하면 이상할 게 없다. 즉, 검찰이 이러한 시간적 연속성 외에 다른 증거 없이 단죄하고자 한다면 잘못이라는 말이다. 맥락상 당연히 그리 해석되어야 할 것을 진중권은 자신이 친절하게 그의 논리를 재구성해가면서 자기 말꼬리를 잡고 비튼다.
또 하나 보자.
"하지만 곽 교육감의 옹호자들은 이를 '판결 전까지는 어떤 도덕적 비판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왜곡했다."
왜 하고 많은 주장 중에서 이런 치졸한 예를 드는가? 곽교육감 옹호 논리가 고작 이 정도라는 인상을 주려고? 진중권 자신이 반대논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한상희 교수의 글에서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해 이런 식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진중권이 사퇴의 대가였다고 생각할 자유는 인정한다는 것은 박동천 교수의 글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가 가져온 것은 어느 '닭'의 논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은 도덕적 비판에서 더 나아가 도덕적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요구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책임을 묻지 않는 논객들에게까지 혼동을 부추긴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누구도 윤리적 문제제기를 틀어막지 않았다. 아직 사실관계가 다 드러나기도 전에 그 문제를 기정사실화하는 진중권의 성급한 단정을 문제삼았을 뿐이다.
다음의 주장을 보라.
"무죄추정원칙의 주장은 법적 판단으로 도덕적 판단을 환원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법적 소송과정을 통해 드러난 엄밀한 객관적 증거와 사실에 입각해서 도덕적 판단도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진중권이 말하는 옹호측 주장과 이 주장을 대비시켜보면, 어느 주장이 더 공감가는지는 단번에 판명될 것이다.
대중이 자신의 주장을 세련된 문장으로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 어떤 주장이 더 타당한지를 판단할 줄 모른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우리가 모짜르트처럼 작곡하는 재주는 없어도 그의 음악을 듣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듯이.
도덕적 책임이 있다거나 없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주장에서 그쳐야지 사퇴까지 말하는 것은 오버다.역시 책임져야할 일이라는 전제 하에 논지를 전개했고, 비난했다. 도덕적 판단을 독점했냐는 비판과 닿는 부분이다.
- 곽 교육감을 처벌하는 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가?
공소시효의 무한확장이라는 법리적 문제도 지적되고, 조항이 너무 포괄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선거비용 보전도 해주고 자리를 제안하기도 하는 가능한 일인데?단일화의 비용 부담을 개인에게 지우는 것이 합당한가, 선거공영제 적용의 필요성은? 법이 항상 옳은가? 법을 문제삼으면 안되는건가? 헌법소원은 왜 있는건가?
- 세 번의 기회? 곽교육감의 판단은 잘못이었나?
측근들끼리의 단일화 약속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사실을 털어놓는다? 아직 범법이 저질러진게 아닌데? 알지도 못하고 추인한 일도 없는데 단일화에 조건이 붙어버렸다는 진중권의 주장은 옳은가? 앞으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는 없는 것인가? 왜 두 개의 대안만 존재하는가? 무엇보다, 윤리적 책임의 주체가 되었어야 했다는 그 방법들은 모두 대가성을 전제로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 윤리에서 선동으로? 곽교육감 옹호 주장은 선동일 뿐인가? (진중권은 윤리와 도덕을 독점했는가?)
대부분의 논객들은 곽교육감이 옳았을 가능성과 틀렸을 가능성을 어느 정도씩 동시에 인정하고 있다. 이걸 틀렸다고 단정하고 있는 것은 진중권이다. 이는 다음 문제와도 연결된다.
- 검찰과 언론에 대한 문제제기가 잘못인가?
글의 말미에 진중권은 이런 주장을 한다.
"검찰의 잘못에서 논리적으로 곽 교육감의 결백이 추론되는 것은 아니다. 둘은 논리적으로 독립된 사안이다. 그러므로 검찰을 비판하기 위해 곽 교육감의 행위를 정당화해줄 필요는 없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로 들리는 주장 아닌가? 꽤 그럴듯하게 들려서 나도 하마터면 이 부분의 맹점을 놓치고 넘어갈 뻔 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검찰의 잘못은 잘못대로 따지면 될 일. 곽 교육감의 잘못까지 덮어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대중들이 양자를 혼동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이 혼동을 바로 잡아야 하나, 그 일을 해야 할 지식인들이 외려 그 혼동을 부추기고 있다."
그는 이를 선동으로 몰아가면서 진보진영 전체에다 대고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까지 끌어들여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한바탕 훈계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박동천 교수는 이에 대해 이미 예전에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좀 길지만 인용해보자.
"실체적 진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사회 통념"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절차를 어긴 수사는 실체적 진실을 오염하거나 호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검찰의 여론 조작은 무엇보다도 실체적 진실의 확정 과정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당한 것이다.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지식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에서 검찰과 보수 언론의 여론 조작이 잘못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문제와 곽노현의 잘못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정에서 밝혀야 하는 실체적 진실은 일어난 일의 물리적 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유무죄의 갈림길에 대한 판단과 결부되어 있다. 이번과 같은 경우, "이면 합의", "대가성", "사전 인지", "선의" 등, 사건의 진상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서술어들이 모두 가치판단을 강하게 함축하는 단어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컨대 보수 언론이 마냥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식으로 보도해버리고, 무엇을 가리켜 "이면 합의"라고 부르는지에는 관심을 차단해버린다면, 여론은 곽 교육감의 유죄 쪽으로 기울 위험이 대단히 높아지는 것이다.실체적 진실에 관해서 이처럼 여론의 고정관념이 형성되고 나면 재판을 담당하게 될 판사의 입장에서도 여론에 반하는 판단을 내리려면 그만큼 추가적인 의지력이 필요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진보를 지향하는 지식인이라면 이와 같은 사건에서 피고 측에게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먼저 여론 조작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성토하는 것이 온당한 순서라고 나는 믿는다."
(출처 : [프레시안] 곽노현 사건, 자학을 도덕으로 착각하는 진보 - [박동천 칼럼] 곽노현을 업고 사법 개혁으로 가자! 2011-09-08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908111214&Section=01 )
어떤가? 이것이 그가 말하는 선동인가? 진중권의 당연해보이던 주장과 훈계가 민망해지지 않는가? 진중권이 훈계를 위해 늘어놓은듯한 단편적인 주장에 비해, 좀 더 통찰력있어 보이지 않는가? 적어도 다시 한 번 되짚어 살펴볼만한 여지를 주지 않는가?
진작에 이 칼럼의 일독을 권했을 때 진중권의 대답은, "그 분 글은 안 읽는다. 수준 떨어져서."였다. 그의 독선이 자신의 수준을 얼마나 높여주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 황우석, 심형래에 대해 진중권이 옳았다고 이번에도 당연히 옳을 것인가?
이걸 대답해야 하는지 한심한 질문이지만, 진중권이 그렇게 믿고 있는 듯 하니 목록에 넣는다. 진중권씨는 자꾸만 김어준 총수나 대중들이 황우석이나 심형래를 지지했던 과거를 끌어들여 이번 주장의 신빙성을 깎아내리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비겁한 방식이다. 논객이 논리를 가지고 말해야지, 과거에 잘못된 주장을 했으니 이번 주장도 말이 안될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이 논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그가 왜 그러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5세 훈이한테서라도 논리가 맞으면 받아들여야지,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정의나 논리의 옳고 그름이 좌우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왜 자신은 지키지 않는가?
- 진중권, 논객질 그만 해야 하나?
아까운 사람이긴 하지만, 상대의 논리를 듣지 않으려 하고 우기기만 하면서 인신공격이나 할거라면 그만하는게 맞다. 그러면서 '논'리가 통하지 않아서 할 일이 없다고 짐싸서 떠나겠단다.
"이 긴 글의 스크롤 압박을 인내할 대중이 얼마나 될까" 한탄하면서, "대중이 선동가를 원하면 가지라"고 비꼬아가면서, 자신의 고결한 영혼을 챙겨서 떠나시겠단다. 가시는 길에 개념도 좀 챙겨가시면 좋겠다.
"이 긴 글의 스크롤 압박을 인내할 대중이 얼마나 될까" 한탄하면서, "대중이 선동가를 원하면 가지라"고 비꼬아가면서, 자신의 고결한 영혼을 챙겨서 떠나시겠단다. 가시는 길에 개념도 좀 챙겨가시면 좋겠다.
어쩌다가 진중권이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정말 어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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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내 소설이다. 중권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다. 이거 꼭 명심하고 보셔야 한다.
진중권의 글은 사실 많이 실망스러웠다. 그의 주장이 너무나 완고하여, 심지어 그가 검찰과 극우가 펼 수 있는 극강의 공격을 미리 시전하여 곽교육감 옹호논리를 굳건하게 만들려고 자신을 내던지는 천사가 아닐까 하는, MB 천사설에 이은 진중권 천사설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아마 조금만 더 했으면,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극우의 '비장미' 비슷한 것까지도 느껴질 뻔 했으니까. 어쩌다 이렇게까지 확신에 차 있어야만 했을까?
진중권이 입장이 신중론에서 단언으로 급하게 선회한 배경에는 여론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검찰과 언론의 떡밥이 무수히 많았지만, 처음에는 신중론을 펴던 그가, 황우석 심형래도 피해갔던 예리한 그가 어째서 확신에 찬 단정들을 늘어놓아야 했을까?처음에 사건이 알려지고 대중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리둥절해 있을 때,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곽교육감의 기자회견이 있은 후에도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여론이 곽교육감 사퇴론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에도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여론이 반전되었다. 노무현과 한명숙이 등장하고, 감성적으로 자극하는 말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진중권은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감정에 호소하는 비이성적 흐름이 점점 거대해지고 여론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장면인데... 황우석과 심형래가 생각난다. 다시 한 번 대중과 싸워야 하는 순간이 왔는가? 이제 나꼼수까지 등장해서 곽교육감을 옹호하면서 사퇴요구에 대해 비겁한 처사라 말한다. 누군가 트윗에 '입진보' 어쩌고 하는 그림을 올렸다. 이건 뭐야? 두 번이나 제대로 밟아줬다고 생각했는데, 김어준은 어째서 이렇게 인기가 많아져서 다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는가?방송을 들어봤더니 약이나 팔고 있는데, 대체 뭐가 그리 열광인거냐? 이건 광풍이다. 그의 정의는 이제 광풍에 휩쓸린 대중들과, 그들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김어준 일당과 싸우는 일이 되었다. 대중은 감정적이었고 휩쓸려갔다. 이것만으로도 그들의 결론은 잘못되었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을 한다. 대중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고, 그것이 꽤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그는 감정적인 대중이 선택한 입장이 그 의도나 논리와 무관하게 옳은 입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면서 때론 매우 위험하지만, 늘 잘못된 것은 아니다. 혁명은 냉철한 이성만으로 일어나야 하는가? 과연 월가를 점령한 군중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여론 반전의 계기는 거짓 주장들이 밝혀지면서 생겨난 것이지, 감정적 호소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대중은 곽노현 교육감의 불확실한 죄보다는 검찰과 언론의 명백한 피의사실 유포와 거짓 선전에 더 분노하였다. 설령 유죄라고 하더라도 곽노현은 적어도 공정한 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대중이 분노한 지점은 거기였다. 있다던 각서와 녹취는 거짓이었다. 박명기의 변론을 법무법인 바른에서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누구나 직감했다. 이건 정의가 아니다. 엄밀한 논리적 추론이 필요하지 않을만큼, 동물적으로 느껴질만큼 뻔해보였다. 대중의 의심이 반드시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시작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다뤄나갈 역량이다. 그러나 진중권의 눈에는 곽노현을 옹호하는 논리가 황빠나 심빠와 다를게 없어보인다고 이미 결론내렸다. 사실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많았다. 곽교육감의 사퇴를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비난을 퍼붓던 글들을 기억한다. 그의 신경질적인 반응도. 하지만 너무 성급했다. 적어도 사퇴를 말하기엔.이번만큼은 진중권이 틀렸다고 나는 생각한다.개개인의 논리는 엉성하고 헛점이 많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그것들이 모여 보완된 큰 흐름이 만들어질 때는 꽤 그럴듯한 것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자기 논리로 말하라고 하면 그리 세련된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말이 그럴듯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가끔 놀랄만할 정도의 감각을 보인다. 진중권이 상대한 개개인들은 '닭'이었을지 모르지만, 개미집단이 얼마나 지능적일 수 있는지 그는 알았어야 했다. 게다가 곽노현은 황우석이나 심형래같은 권력이 아니었다. 그는 대중의 염원으로 탄생한 진보교육감이었고, 매우 큰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렇게 욕을 하던 노무현임에도 탄핵에 맞서서는 그를 비호했던 군중들에게는,설령 곽노현이 잘못을 했더라도, "매우 도덕적인" 정권과 검찰과 언론이 그를 옳지 않은 방법으로 단죄하는 것은 몹시 분노스러운 일이었다. 대중은 진중권이 검찰과 언론을 상대로 싸워주길 원헀지만, 그는 대중을 상대하기로 했다. 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는 대중이 생겨났다. 대중은 그를 비난하고, 이는 다시 진중권의 자기방어를 강화시켰다.
이제 그가 왜 그토록 독선적인 스탠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는 또다시 혼자만의 성전을 치르고 있고, 이번에도 결국엔 승리하리라 믿고 있다. 황우석 심형래 때와 같이, 자신은 틀릴 수가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는 돈키호테가 되어버렸고, 그가 닭장이라고 믿은 거대한 개미지옥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황우석과 심형래 논쟁 때 그를 너무 외롭게 방치한 때문은 아닌가 싶다. 무수한 '닭'들을 혼자만 상대해야 했던 기억으로, 그는 아무도 믿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외로운 싸움, 그러나 끝내 승리하리라. 이미 두 번이나 싸워 이기지 않았는가? 어쩌면 그의 성격을 탓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린 그를 너무 외롭게 방치했다. 그에게는 조국 교수밖에 친구가 안보였다. 그가 조국 교수에게 외모적 우위를 억지로 인정받아가면서 자신이 미의 절대기준이라는 둥 유치한 트윗을 날리고 있을 때, 그가 '닭'들과 오랜 시간을 공들여 보내고 있었을 때, 그는 외로웠던 것이다.
진중권에게도 오세훈만큼이나 절친이 필요했다. 이럴 때 따뜻하게 안아주는건 오세훈마저 절친 삼아버린 김어준 총수가 제격인데, 진중권은 그를 너무 일찍 적으로 돌려버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닭'뿐이지만, 그마저도 떠나려고 한다.
혹시 이것은 중년의 위기인가? 비행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비행'을 꿈꾸었던가? 제발 한 때의 방황이기를....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진중권답지 않은 행동과 진중권스러웠던 행동들, 조금은 이해가 된다. 어쩌면 조금 억지스럽게라도 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해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한번쯤 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패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말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
"친애하는 대중이 선동가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
다만, 아무리 비루하고 허접해도 내 영혼은 최소한 그런 짓에 동참하지 않을 정도만큼은 고결하다."
다만, 아무리 비루하고 허접해도 내 영혼은 최소한 그런 짓에 동참하지 않을 정도만큼은 고결하다."
대놓고 자화자찬... 이건 조국 교수에게 날리던 외모우월 드립과 같은 맥락 아닌가?김어준 총수의 "나는 잘생겼다"를 어설프게 따라하는 것 같은 짙은 구애의 절규 아닌가?어쩌면 진중권이 정말 질투했던 것은 김총수의 절친 드립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총수, 진중권을 절친삼아줘라. 아니면 오세훈이랑 짝지워주던가.
진중권, 그는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전장을 떠나버린 것 뿐이다.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누가 시키지도 않은 논쟁을 너무나 즐기는 그로서는 다른 주제로 돌아올 가능성이 클지 모른다. 하지만 돌아온 그는 예전의 그와 같은 모습일까? 나는 그가 '닭'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논객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서 배우지 못한다면, 더 이상 논객이라 불릴 이유를 잃게 된다. 대중이 옳을 때도 있다.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독선이 된다.
혹자는 다중의 지혜를 말하고, 또 누군가는 다시 맹목적인 군중의 폭력성을 말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그것은 늘 상존하는 것이다. 촛불시위를 생중계하던 당시에 그는 대중을 믿었던가? 나는 잘 모르겠다. 실력없는 학생이 찍어서 정답을 맞추듯, 흥분한 군중이 엄밀한 논리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도 옳은 지점에 서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그는 배우지 못했던가? 수많은 의견들과 입장들이 혼란스럽게 뒤엉켜있었지만, 그들의 주장에 귀기울일만한 일리가 있었다는 것을 그 때 그는 몰랐을까? 흥분한 군중은 무척 위험해질 수 있다는 그의 경고에는 동의하지만, 나 또한 그 숫자와 상관없이 그러한 군중속의 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을까?
논리가 필요하지 않아서 논객이 떠나는게 아니다. 저 위대한 가카를 앞에 두고 논객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라는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당신의 기나긴 글을 누가 읽겠냐고? 남들이 다 당신처럼 제목만 읽는 줄 아는가? 진중권, 핑계는 비겁하다. 이번에는 남들이 아니라 자신 속에 들어있는 '닭'과 먼저 싸우라. 당신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독선을 고집한 당신의 태도만큼은 절대로 지지할 수가 없다. 아울러 진중권에 대한 인신공격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를 밝힌다. 정말 '닭'소리를 들어 마땅한 당신들의 닭짓이 그를 괴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하라.
총수의 진짜 절친 자리를 노리고 있는...
메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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