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rainer 님의 [진중권의 곽노현 글에 대한 반론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관련글 링크 ---------------------------------------------------------
[진중권의 곽노현 거울에 비친 진보의 일그러진 초상 에 대한 반론] 에 묻는다.
NoBrainer 2011-10-14
http://www.ddanzi.com/ddanzi/section/club.php?slid=board&bno=36459
진중권의 곽노현 거울에 비친 진보의 일그러진 초상 에 대한 반론
메티스 2011-10-13
http://www.ddanzi.com/ddanzi/section/club.php?slid=board&bno=36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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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글을 읽고 반론까지 써주셔서 먼저 깊이 감사드린다.
솔직히 허접하고 장황한 글 누가 다 읽어보겠나 싶기도 했는데,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민망함을 무릅쓰고 올린 글이었다.
기왕 올려주신 물음이니 감사함을 뒤로하고 답변을 해드리는게 예의라 생각한다.
일단 핵심 두 줄 요약한다.
나는 곽교육감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진중권의 단정과 사퇴 요구가 너무 성급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책임을 지더라도 그 수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 다른데 어째서 콕 찝어서 사퇴를 말하는가?
짚어주신 부분들 하나씩 답변해보자.
1. "사건의 재구성. 그 이상 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약속 이행의 요구와 돈 전달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 즉 대가성이 있는가 하는게 이 문제의 핵심 쟁점 아니던가?
진중권은 사실만 나열했다고 했지만,
이런 식으로 극도로 단순화해버리는 경우, 두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느끼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객관성을 가장한 악의적인 나열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는 없는가?
적어도 이러한 나열만으로는 대가성을 판단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적지 않은가?
이러한 위험성은 곽교육감이 이미 기자회견을 통해 지적한 바 있다.
"두 개의 사안을 분별없이 취급하면 그렇게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법은 분별력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사안의 차이를 몽롱하게 흐려버린다면 법은 왜곡되거나 혼탁하게 되는 것입니다. "
진중권은 분별력을 가지고 이 사안을 판단하고 있는가?
나는 적어도 이 정도의 단순한 사건 재구성 만으로는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것만을 근거로 결론을 내리는 진중권은 매우 성급했다.
게다가 사퇴 요구라니? 워~~워~~ 그건 속도위반이라고.
2. '차용증 해석' 과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
차용증 해석 부분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차용증은 진중권의 해석과는 반대로 해석될 여지가 더 크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최소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고,
이백번 양보해서 진중권의 해석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대가성을 입증하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곽교육감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진중권의 단정과 사퇴 요구가 너무 성급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대가성의 거의 유일한 근거로 삼는 차용증에 대한 그의 해석이 그리 단단하지 못하며,
그러므로 진중권의 추론이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법무법인 바른의 존재 등은 좀 더 지켜볼 여지를 말하고자 하는 근거다.
"'이중차용증' 이라는 의심스러운 사실이 하나 '더해져서' 심증을 굳혔다"라고 하셨는데,
그럼 님의 주장에 따르자면, "자신들의 범죄를 입증할" 이중차용증을 애초에 왜 작성했느냐는 반론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게 그렇게 확실하게 심증을 굳혀준다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차용증을 작성할 이유 자체가 없어지지 않느냐는 말이다.
차용증을 썼다면, 그것은 차용증의 존재가 무죄를 입증할 근거로 쓰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을 진중권처럼 반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곽교육감이나 강교수가 법학 전문가라는 점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진중권의 해석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대가성을 입증하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부분은 별개의 논증이다.
차용증의 존재가 대가성의 근거가 된다면, 차용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또한 대가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차용증이 있건 없건 대가성을 주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차용증의 유무가 대가성을 밝히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사실 이 두 가지 주장은 모두 대가성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차용증이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정당화한 후, 이를 가지고 다시 대가성을 증명하려는 주장들이다. 전제를 해놓았으니 결론이 그렇게 나는 것인데 마치 그것이 증명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대가성을 증명한다면, 차용증의 유무에 따라 대가성이 달라지거나 적어도 한 쪽만 성립해야 할 것이다.
좀 복잡히지만, 결론적으로 차용증은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한다.
차용증에만 기대고 있는 진중권의 논리는 허술해졌다. 아직도 책임지라 말하는게 성급하지 않은가?
3. "곽감의 무지는 죄다"
무지가 죄가 될 수도 있다해도, 그 책임의 수준이 어째서 사퇴가 되어야 하는지는 누가 정한건가?
그런 식이라면, 자신의 측근들이 줄줄이 잡혀가는 상황에서 진중권은 왜 이명박에게는 사퇴를 요구하지 않는가?
울릉도에 있는 말단 공무원이 비리를 저질러도 이명박에게 사퇴를 요구할 것인가?
이명박 아들이 내곡동 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불법성을 의심받고 있다.
님의 논리대로라면 이명박이 몰랐어도 죄다.
왜 이명박에게 당장 사퇴를 요구하지 않는 것인가?
우리 모두 지금 정의를 무너뜨리고 있는 중인건가?
어디까지 어느 수준으로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리 단순한 문제인가?
왜 사퇴여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을 가지고 있다면, 한 번 내놔보기 바란다.
그 기준이 대체 뭔지 한 번 들어보기나 하자.
4. "사퇴는 판결전에 하는거다"
지금 책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성급하다고 앞서 지적했다.
책임을 묻게 되는 때가 오더라도, 그 책임지는 방법은 왜 사퇴뿐인가?
판결 후에 물러나는 것은 어째서 책임지는 방법이 되지 못하는가?
결론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단순화해놓고, '사퇴 vs 사퇴 안함' 의 구도에서 선택을 강요한 후,
사퇴가 아니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처럼 공격하는 것도 진중권의 오랜 버릇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사퇴라는건 책임이 분명해지고 스스로 책임을 인정할 때 하는 것이다.
스스로 무죄라고 믿고 있는데 무슨 사퇴를 하라는 것인가?
사퇴는 책임이 분명해졌을 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책임 여부에 대한 판단은 갈리고 있다.
진중권은 확신하는지 모르겠으나, 반대 의견도 많다.
아직은 책임 여부를 따질 때이지, 책임지라고 강요할 때는 아닌 것이다.
진중권은 자신의 판단을 남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스스스로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자유지만, 강요하는건 다른 문제다.
게다가 아직 사건의 실체를 다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러지 않았는가?
한참이나 지난 후에 박명기 교수의 변호인들을 통해서, 그동안의 언론 보도가 거짓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 외에도 숱하게 새로운 거짓들이 드러났지만,
그래도 진중권의 주장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는 과연 분별력을 가지고 새로 밝혀지는 사실들을 자신의 판단에 반영하고 있긴 한건가?
사퇴는 판결전에 하는거다 라는 것은 말꼬리 잡기에 가깝지, 문제의 핵심과는 동떨어져 있다.
5. "법이 잘못됐다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어쩌다가 또 법을 무시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것인가?
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가?
본문에 분명히 헌법소원의 예를 들었다.
법이 잘못되었으면 고치라는 제도다. 그것도 법 제도의 일부이고, 준법인 것이다.
그것을 마치 법을 무시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치졸한 꼬투리잡기 아닌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고 적용된 사례 자체가 없는 법 조항인데,
관심도 없다가 갑자기 들먹이냐고 힐난하는 것은 또 뭔가?
평소에 문제삼지 않던 법이면 다 그냥 받아들이라는게 님이 주장하는 것인가?
기본권을 약간만 침해하는 법은 고치자고 하면 안되는가?
진중권의 이 주장을 보자.
"한 교수는 '친구를 도와주려는 선의마저도 처벌하는 법은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가진 지극히 특수한 개인적 교우관계를 배려하기 위해 법 자체를 바꿀 수는 없잖은가. 게다가 정말 법 자체가 문제라고 보았다면, 돈을 건네기 전에 '정말로 선의에서 친구를 돕고 싶은데 현행법에 저촉된다'며, 사전에 그 문제를 공론화 했어야 한다. 일단 돈부터 건네고 나중에 걸리고 나서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따지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곽노현 교육감의 주장을 보자.
"법의 특징과 수단은 합법성에 있고 목적은 인간다운 행복한 삶입니다. 합법성만 강조하고 인정을 상실하면 몰인정한 사회가 되고 그것은 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공권력은 명확한 검을 휘둘러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검이 아니라 살리는 검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가 배우고 가르친 법은 인정이 있는 법이자 도리에 맞는 법입니다."
진중권이 말하는 법은 사람을 살리는 법인가? 그는 법률의 기계적 적용을 주장하는 것인가?
법이 분별력있게 적용된다면, 친구를 도우려는 선의를 처벌해서는 안되는 것이 맞다.
그것은 대가성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반영되면 되는 것이지, 법 개정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진중권은 자신이 유죄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놓고는, "걸리고 나서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따지는 것"이라는 식으로 유죄인 듯 단정을 한다.
진중권은 곳곳에서 이렇듯 자의적으로 문제를 엉뚱하게 바꿔놓고 반박하는 묘한 논증을 반복하고 있다.
지금 따지자는게 선의인지 대가성인지 하는 문제이지, 선의도 처벌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 동의하지 않는가? 어째서 진중권은 이런 말장난을 늘어놓는가?
그리고 법 자체의 문제, 법 해석과 적용의 문제, 법을 다루는 조직의 문제 등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법 자체에 대항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진중권의 오해일 뿐이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곽교육감의 무죄를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 책임을 묻는 진중권에 대해, 여러 논자들이 예수, 안티고네 등 법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어도 도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례들을 열거해왔다.
자기가 묻고 있는게 도덕인지 법인지 헷갈려하는건 과연 누구인가?
논쟁의 이유
글 말미에 써주신 내용에 대해서도 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왜 그렇게 승부에 집착하는가?
이 논쟁에서 이기는게 그리 중요한가? 이거 틀린 사람은 딴지를 떠나거나 잠수타야 하는건가?
내가 진중권에게서 우려하는게 토론을 너무 승부로 본다는 것이다.
좀 틀리면 어떤가?
내가 지금 딴지에서 님 쫓아내자고 이러고 대답하고 있는건가?
박동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하나의 바탕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원순이 뽑혔다고 박영선을 패자로 봐야 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죠. 논쟁의 목적은 지식의 자유로운 전파와 발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이기고 지느냐는 문제는 잊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곽교육감 사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것은 님의 자유다.
그것이 책임질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유고, 그 일로 사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판단하는 것도 물론 자유다.
거기에 대해 자유롭게 논쟁을 주고받을 수 있다.
진중권의 판단이 내가 보기엔 잘못되었다 생각해서 반박을 했지만, 그렇다고 진중권이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 내가 지적하는건 그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따져보자는 것이지, 그의 입을 막고자 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진중권은 상대가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의 판단을 강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을 흐리는 사람들이라 매도하고, 다들 미쳤다 라는 비난도 서슴치 않았다.
급기야 '논'리가 없다고 판을 떠나기까지 했다.
그는 왜 늘 논쟁을 이렇게 승부로만 하는 것인가? 왜 논쟁을 논쟁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진중권에 대한 인신공격성 폭력에는 당연히 반대한다.
그가 대중과 싸워온 몇몇 사례에서, 나도 그가 안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어떤 주장을 할 권리를 지켜주는 것과, 그의 주장 자체를 지지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에 대해 의리를 지키자고 그의 주장을 따르겠다는 것은, 진중권이 곽교육감 사건에 대해 진영논리라며 '진보진영 전체'를 싸잡아 비난한 이유와 뭐가 어떻게 다른가?
그렇게 되면 님은 진중권에게도 적이 되어버린다. 자가당착 아닌가? 진중권은 의리같은거 바라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의리를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유대를 확인하고 싶을 때나 쓰는거지,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논쟁을 벌일 때 들고나올 무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곽교육감에게 마음의 빚이 있고, 그를 믿는 것은 사실이다.
그를 신뢰하므로 무죄를 믿는다는 말에 대해 진중권은 필요 이상으로 비난했다.
그런 감상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논쟁에 있어서 이건 결론을 내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남이 안 믿으면 그만 아닌가?
아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그것을 무죄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해 정색을 하고 못할 말을 하는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단순한 감상을 말하는 것까지 막으려 하는 것은 또 무슨 폭력인가?
그것을 상대방을 설득하는 근거로 사용하고자 할 때, 그 때 그건 아니라고 정중히 말해주면 그 뿐 아닌가?
정희준 교수의 글은 너무 액면 그대로 보신 것 아닌가?
나도 그것이 잘못 읽힐 가능성 때문에 함부로 추천하기가 좀 꺼려지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글은 아니다.
이것도 박동천 교수님 멘트를 좀 빌려보자.
"정희준 교수의 글도 (고의로) 도발적으로 쓴 의도까지 읽는다면, 나름 상당히 중요한 점을 부각한 겁니다. 그 중요한 점을 상당히 반어법에 실어 표현한 건데, 진선생은 글의 의도를 읽어내지 않고 말꼬리를 잡았지요. 어쩌면 제목만 봤을 가능성도 꽤 높구요."
편견없이 읽어보면, 진중권이 지적하지 못한 다른 중요한 논점들을 많이 제공해주는 훌륭한 글이다.
보수 vs 진보의 대립이 부패 vs 반부패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어, 정치적으로 보수인 안철수나 손석희가 진보로 보이는 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닌가?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것이 과연 그가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뜻인가?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운 진중권, 그는 다른 진보인사들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도덕성과 관련해 정희준 교수의 말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결국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도덕성'의 깃발을 드는 자기 선언보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더 많은 칼럼들이 여기에 있다.
http://methis4ublog.blogspot.com/2011/10/blog-post_13.html
다양한 논점들을 접하면서 자기 관점이라는 것을 완성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논쟁을 하는 이유가 아닌가?
메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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